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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영성의 특징과 개혁주의 신학적 조명과 평가

 

감순성 교수 (2016.11.7, 코람데오닷컴 게재문)

 

I. 들어가는 글

금년은 고려신학대학원 개교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8.15 해방직후 1946년 개교된 고려신학교 설립은 한국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 사건이다. 일제 강점기 한국교회가 신사참배 강요로 신앙의 근간이 위협당할 때, 장로교회 내에서 그에 맞서 반대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소수 지도자들이 해방과 함께 출옥하면서 그 신앙운동의 연장선에서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장로교회 내에서 전개된 신사참배 반대운동은 십계명 1계명과 2계명이 근본적으로 위협받는 역사적 정황 속에서 배태되어 순교적 삶으로 꽃을 피운 바른 신앙, 바른 영성운동이었다. 해방 후 이 운동은 장로교회 내에서 소위 고려파 운동1)으로 불리는 교회쇄신 운동 즉, 바른 교회운동으로 발전되었고, 고려신학교는 그 진원지 역할을 감당했다. 이 운동에 나타난 영성이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고백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신영성2)은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한국인의 신앙과 정서로 꽃피운 가장 한국적이면서 성경적인 한국적 개혁주의 영성, 십자가의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역사적 고신영성은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주신 선물이며 따라서 한국교회가 공유해야 할 뿐 아니라, 이 시대에 다시 회복되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고려파 운동에 나타난 신앙과 영성이 그 내용과 질에 있어 한국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 동안 한국교회에서 주목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첫째, 당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주도한 무리들이 소수파이었기에 신사참배에 참여한 다수 기득권 주류세력들이 교권으로 이들의 쇄신운동을 거부했기 때문이고, 둘째, 1946년 9월부터 1952년 9월까지 6년간 소위 고려파 운동이 대한예수교장로회 내에서 존재하다가 이후 경남노회(법통)가 총회에서 축출되어 고신교회가 독립하게 됨으로써(한국장로교 1차 분리) 그 운동이 대한예수교장로회 내에서 단절되면서 그 유산이 고신교회의 전유물로 오해되어 왔기 때문이다.

 

고려신학대학원 개교 70주년을 맞이하여 본고에서는 초기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된 고신영성의 특징 및 의의를 개혁주의 신학적으로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신영성이 한국교회 역사상 가장 한국적이며 성경적인 개혁주의 영성, 십자가의 영성임을 밝히고, 이후 70년 역사에 나타난 고신영성의 발자취에 대한 개괄적인 고찰과 함께 고신영성이 오늘의 고신교회와 한국교회에 주는 의의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전망하고자 한다.

 

II. 펴는 글

 

1. 영성과 신학과의 관계

 

기독교 영성이란 간략히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반응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믿음을 전제하며, 여기에는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에 관한 객관적, 교리적 차원, 그 하나님을 주체적으로 자각하고 인식하는 인지적 차원, 그 결과 윤리적 삶으로 나타나는 실천적 차원이 포함된다. 두 번째 차원인 하나님에 대한 주관적 인식으로서의 하나님 체험이 좁은 의미의 영성이며, 넓은 의미에서 영성은 하나님의 영 안에서 살아가는 총체적 삶의 양식을 일컫는다. 이처럼 영성에는 신앙의 내용과 체계로서의 교리와 신조라는 지식적 요소와 초월적인 하나님을 인식하고 자각하는 경험적 요소가 상호 연관된다. 여기에 신학과 영성의 관계가 대두되는데 영성이 신학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신학이 영성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 상호 영향이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으로도 작용하기도 한다.3) 바른 신학은 영성을 포용하며 영성에 지식을 주며 영성을 유지한다.4) 반대로 바른 영성은 신학을 수용하며 신학에 생명을 주고 신학을 깨어있게 한다.

 

여기서 고신영성과 신학의 관계를 고려해 볼 수 있다. 먼저 주목할 것은 고려신학교가 설립되기 전, 신사참배 반대라는 영성운동이 먼저 존재했다는 점이다. 물론 당시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참여한 목사들이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평양신학교(1901년도 설립)에서 신학수련을 받았지만, 당시 신학은 보수 복음주의 성향의 초보 수준이었고, 교회 사역자 양성을 위한 성경학원 수준이었다. 이 점에서 선교초기 상황에서 한국장로교의 신앙과 영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신학교육이라기보다는 이후 일어난 평양대부흥운동(1907년)을 통해서였다고 보아야 한다. 즉 대부흥 사건 속에서 성령의 사역을 통해 경험된 영성이 신학의 영향에 선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통해 형성된 고신영성과 개혁주의 신학과의 관계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해방 후 고려신학교의 설립을 주도한 인물은 신학자가 아니라 신사참배 반대로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한상동, 주남선 두 목회자였다. 또한 고려신학교가 Calvin주의 신학을 표방하고 출범했지만 당시 신학수준은 지극히 미약했을 뿐 아니라,5) 그 시기 한국장로교회의 주된 관심사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는 정통 보수신학이었다. 따라서 당시 고려신학교 설립자와 교수진 그리고 학생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개혁주의 신학과 신조가 아니라, 고신영성이었다.6) 고려신학교의 신학을 논할 때 신학보다 고신영성에 먼저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공동체 영성형성의 세 요소

 

영성은 성경, 전통, 상황이라는 세 가지 요소의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된다. 여기서 전통이란 성경을 해석하는 신학체계, 교회정치 형태, 예배방식, 리더십 등을 포함하며, 상황이란 해석자로서의 개인 신자와 신앙공동체가 처한 삶의 정황(Sitz im Leben)을 말한다.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과 인간의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반응 간에 생겨나는 내재적 역동성은 단지 교회 내에서 신앙적, 전통적 요소로만 발생하지 않는다. 사회적 존재로서 세상 속에서 개인과 신앙 공동체가 직면하는 다양한 상황들, 즉 경제, 정치, 사회 문화적 상황 및 국제 질서 등과의 관계에서 야기되는 역동적 요소들과 함께 복합적으로 일어난다.7) 상황이란 다양한 권세들의 결합이며, 그 속에는 영적 권세들(powers)이 절대적 의미와 능력으로 인간의 의식세계를 지배한다.8) 이들은 인간에게 마치 신적 존재처럼 충성을 요구하며, 인간의 부패성과 결탁하여 신(神)이해의 과정에서 신관(神觀)의 변질과 왜곡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공동체 영성형성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상황적 요소를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상황은 개인 및 신앙공동체가 하나님을 해석하고 경험하는 삶의 자리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는 한국인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극도의 억압과 착취를 강요당한 시기이다. 여기에 일제는 군국주의9) 이데올로기를 통해 천조대신(天照大神)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요구했다. H. Berkhof에 따르면 군국주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 권세이다.10) 그에 항거할 경우 개인과 공동체의 모든 삶과 신앙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위협당하는 절대적 권세로서 당시 국가와 교회 위에 군림했다. 그 결과 그 앞에 무릎꿇은 인본주의 세력들이 교회 안팎에서 활개를 치고 맹위를 떨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사유와 이성으로는 만날 수 없는 분, 인간이 만든 교회조직과 제도 속에 계시지 않고 고통 속에 숨어 계신 분(Absconditus Deus)이었다. 바로 이 삶의 자리에서 루터가 말한 십자가의 신학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으로 경험하고 고백한 것이 고신영성이다. 고신영성은 신학적 사유와 이성에 의해 형성되고 고백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이성에 기초한 신앙과 삶이 근본적으로 부정당하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중심의 ‘영광의 신학’을 거부하고, 목숨을 건 자기부정을 통해 온 몸으로 인식하고 경험한 하나님을 순교적 삶으로 꽃피운 십자가의 영성이다.11)

 

공동체 영성을 형성하는 상황적 요소 중에는 민족성과 개인적 기질도 포함된다. 이 요소 역시 하나님을 해석하는 삶의 자리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순교적 영성이 하나님의 특별은총의 산물임이 분명하지만, 여기에 하나님이 한국인에게 부여하신 지조와 절개라는 민족성과 기질이라는 일반은총적 요소도 개입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목숨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지조와 어떤 고난과 유혹 앞에도 자기의 신념에 어긋난 일이 있으면, 왕이나 누구에게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절개가 선조들의 신앙과 삶 속에서 성령의 역사로 열매 맺고 꽃피운 것이 고신영성이다. 이 점에서 고신영성은 초기 기독교와 종교개혁 시대의 영성의 맥을 잇는 진정한 의미의 한국적 개혁주의 영성, 십자가의 영성이라 할 수 있다.

 

3. 고신영성의 특징

 

본 장에서는 고신영성에 나타난 특징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하나님 인식의 방법, 영성이 지향하는 방향과 범위 그리고 세상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분석할 것이며, 이후 이러한 특징들이 개혁주의 신학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평가할 것이다.

 

1) 말씀과 기도중심의 체험적 영성

 

하나님 인식의 방법에 있어서 고신영성은 말씀과 기도를 통한 체험적 성격이다. 고신영성 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말씀과 기도에 목숨을 건 신앙인들이었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 이 두 가지를 통해 하나님 부재의 상황 속에서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깊은 임재를 체험했다. 한상동은 “신앙의 3계단”이라는 그의 설교에서 세 가지를 강조한다.12) 첫째, 인간의 지식과 사고방식으로는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셋째, 기도할 때 신령한 눈이 밝아진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러질 때 심령의 변화를 받게 되는 것인즉, 힘써 말씀을 읽고 들으며, 기도에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인생은 자신의 지식, 사고방식, 사색만으로는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라고 결론을 맺고 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한 영성의 체험적 특징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에서 나타난 성령의 사역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데 해방 후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남한에서 일어난 고신영성 운동에도 동일한 특징들이 나타난다. 부흥사경회의 형식으로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는 열정이 고신영성 운동에 지속되었고, 죄고백과 성령충만을 위한 기도회 역시 부흥사경회의 중요한 요소였다. 주목할 것은 말씀과 기도를 통한 성령의 임재체험이다. 성령의 역사로 말씀에 대한 깨달음은 기쁨, 평안, 감격, 감사 등의 정서적 체험을 수반하였다. 기도 역시 일방적 간구로 끝나지 않고 성령의 은혜를 정서적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형태가 보편적 현상으로 나타났다. 많은 경우 죄에 대한 애통과 함께 눈물이 수반되었다.13)

 

2) 자기부정의 영성과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

 

하나님 인식의 방법의 측면에서 고신영성의 또 다른 특징은 자기부정이다. 죄로 부패한 자기중심성을 십자가에 못박는 영성이며,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부정하고 포기한 영성이다. 여기서 자기부정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긍정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극한상황 앞에서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향한 온전한 순종과 절대충성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한상동 목사는 그의 설교에서 “신앙세계는 절대 순종”이라고 역설하고 있다.14) 자기부정을 통한 절대순종과 충성은 주남선 목사의 지사충성(至死忠誠)의 영성에서 생생하게 나타난다.15) 지사충성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뜻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지사충성의 영성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 손양원 목사의 순교에서도 나타난다. 6. 25전쟁이 발발했을 때 피난을 가지 않고 성도들을 지키다가 공산당들이 쳐들어오기 전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는 내용의 요한계시록 2장 10절 설교를 한 후, 피신하지 않고 있다가 공산당들에게 붙들려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자기부정과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은 세상가치의 중심에 서기를 포기하고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 부요 대신 가난을, 강함 대신 약함을, 넓은 길 대신 좁은 길을 기꺼이 선택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한상동 목사는 195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고신교회가 축출되었을 때, 90% 이상의 교인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목회하던 초량교회에서 빈손 들고 나와 그들과 함께 삼일교회를 개척하였다.

 

3) 주님과의 신비적 친교의 영성

 

고신영성은 주님과의 친교에 있어서 신비적 차원의 깊이를 보여준다. 초창기 고신의 지도적 인물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매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추구하였고, 그 과정에서 신비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깊은 차원의 친교를 경험했다. 이러한 체험은 한상동의 여주동행(與主同行)의 영성에서 잘 나타난다. 한상동은 자신이 신비주의는 배격하지만 신앙의 세계에 신비가 있다는 말을 종종 했다.16) 그는 평소 깊은 기도와 묵상 가운데서 살았으며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깊고 충만한 임재의식 속에서 주님과 동행했다. 신사참배 반대로 옥중에서 극심한 고문에 시달리며 죽음의 문턱에서 그가 경험한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친교체험은 고신영성의 탁월성을 보여준다.

 

1940년 7월 3일이었다. 나는 경남 도경찰부(道警察部) 유치장에 구검이 되어 인생으로서는 차마 견디지 못할 어려움을 당하였다. 나는 그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나의 전 생명을 맡기었다........ 형사는 물론 나의 숨이 끊어지도록 어려움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을 향하여 다른 세계에서 주님과 교제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의 얼굴은 태연하였다. 평 화의 세계를 참으로 맛보았다.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나는 그때 맛보았다. 그 사랑은 샘 솟 듯하였다. 나는 갖은 어려움을 당하며 나의 몸을 자유로이 할 수도 없었다. 그때 주님께로부 터 오는 한없는 그 사랑, 아- 나는 너무 감격에 넘쳐서 울었다.17)

 

이 영성이 바로 Calvin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것은 인간의 이성과 지성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신비한 것이며, 영적인 경이에 속한다고 표현한 주님과의 영적 교제의 체험적 깊이의 차원이다.18) 여기서 한상동이 체험하고 있는 영성은 오늘날 소위 관상기도(觀想祈禱)라는 이름으로 추구되는 현실도피적, 신비주의적 영성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여기서 경험되는 신비는 극한 고난상황 한 가운데서 자기를 부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려는 실존적 투쟁으로서 주님과의 깊은 친교의 신비적 차원을 보여준다.19)

 

4) 회개와 성화의 영성

 

고신영성이 지향하는 방향에 있어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은 회개와 신앙부흥을 통한 성화이다. 이것은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이라는 고려신학교의 교육이념 및 고신교회가 한국장로교 총회로부터 독립하면서 추구한 이념에 그대로 나타난다. 여기에는 당시 자유주의 신학의 대두와 신앙적으로 타락하고 변절된 한국교회의 정화와 쇄신을 향한 비전과 열망이 담겨있다. 고신영성 운동에 참여한 교회들은 시작부터 회개와 자숙을 강조하였고, 실제로 1950년대 초까지 회개를 신앙과 생활, 설교의 중요한 주제로 인식했다. 이상규에 의하면 고신영성을 추구했던 교회들은 '회개에 심취한 교회'였다.20) 회개는 해방 후부터 6.25 전후까지 교회생활에서 가장 중시된 가치였다.

 

고려신학교는 이 회개운동의 진원지였다. 1950년 4월 6.25 전쟁 발발 직전 당시 박윤선 고려신학교 교장이 인도했던 경건회에서 설교직후 한 사람씩 공개적으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기도회가 한 주간 내내 계속 되었고 그 회개운동은 전국교회로 확산되었다.21) 초창기 고려파 운동은 종종 회개운동 또는 진리운동으로 표현되었다. 고신영성을 사모하며 추구했던 교회 성도들은 모일 때마다 회개의 눈물이 있었다. 그들은 현실의 고통 때문에 울지 않았다.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여 울었고, 성결을 사모하여 자신의 죄 때문에 애통했고,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의 역사를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다.

 

고신[영성]의 역동성은 어두움의 세력에 대한 파괴력에서 나타나며 그 결과는 놀랍다. 죄에 대항하는 문제에 이르면 그들은 강하게 부딪치고 강하게 싸운다. 사죄의 제물이 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할 때 는 많은 청중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전하던 지도자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어떤 분은 호주머니 뒤에서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어 돌아서서, 혹은 한복 소매 자락에서, 어떤 분은 주먹으로 눈물을 닦고, 어떤 분 은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감격해 하며 설교를 이어가는 장면은 초창기 고신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22)

회개를 통한 부흥체험은 주님의 계명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기 원하는 성화의 삶을 향한 열망으로 나타났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율법적인 경향으로 흐르기도 했지만, 당시 고신교회 신자들의 삶은 전반적으로 신앙고백이 같은 여타의 장로교회들과는 분명한 차별성을 보여주었다.

 

5) 교회쇄신을 지향한 공동체적 영성

 

고신영성은 두 가지 면에서 공동체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그 영성이 특정 개인이나 몇몇 소수를 통해서가 아니라, 영국의 청교도 운동처럼 집단적인 운동의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는 점이고, 둘째는 그 영성이 지향하는 방향성이 회개를 통한 교회쇄신이라는 공동체적 성격을 티고 있다는 점이다. 고신영성에서 강조된 회개와 부흥의 초점은 개인이 아니라, 교회중심의 공동체 회복이었다. 한상동은 “현하(現下) 대한교회(大韓敎會)에”라는 글에서 당시 신사참배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한국교회를 향해 경고하면서 “따라서 우리들은 시급히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쓰고 회개할지니라. 이는 여호와의 진노가 무서운 까닭이다”23)라고 역설하면서 당시 신사참배의 죄에 대한 회개를 개인적 차원으로 치부하는 다수파들의 입장을 반대하며 공적 차원의 회개를 요청하고 있다. 초창기 고신영성의 주된 관심은 당시 신사참배가결로 무너진 한국교회 재건이었기에 회개를 통한 교회쇄신의 비전은 한국교회를 넘어 세계를 향했다.24)

 

6) 저항과 투쟁의 영성

 

세상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태도와 관련하여 고신영성은 어떤 특징을 보여주는가? 고신영성 운동의 시발점이 일제의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과 투쟁이었다는 것은 신앙적 투쟁의 일차 대상이 세속 국가와 시대정신이었음을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 고신영성을 주도했던 교회 지도자들은 모두 애국자였다.25) 그들은 목회자였지만 그들의 눈은 교회 내에 머물지 않고 그 너머를 향했다. 고신영성에서 저항과 투쟁의 극치는 주기철 목사의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영성에서 나타난다.26) 그 영성은 그 시대의 영적권세에 맞서서 죽음으로 저항하는 영성이요, 불의로 고난받는 민족과 역사의 고통에 동참하는 영성이다. 뿐만 아니라, 정절을 잃고 배교하는 조국교회를 향해 애통하는 영성이요, 죄와 불의에 대해서는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영성이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지배한 영적 권세들과 피흘리며 싸워서 승리한 영성이다. 이점에서 고신영성은 개인의 회심과 교회내적 관심사에 주된 강조점이 있는 복음주의 영성과는 차별되는 개혁주의 영성이다.

 

7) 사회적 약자를 향한 디아코니아의 영성

 

고신영성이 신사참배에 대한 반대와 저항에 있어서는 일치하지만, 세상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는 이 운동에 참여한 개인마다 고유한 빛깔을 가지고 나타난다. 이 점에서 손양원의 영성은 특별한 면을 보인다. 그도 역시 신사참배 반대로 두 번의 옥고를 치렀지만, 나환자들로 구성된 애양원 교회 목회를 통해 나타난 그의 영성에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자기희생적 삶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공산분자에게 총살당한 두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께 10가지 넘치는 감사와 함께 그들을 죽인 원수까지도 용서하여 양자를 삼은 그의 모습은 십자가의 영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디아코니아로서의 고신영성은 6.25 전쟁직후 난민들과 병자들을 구호하고 치료하기 위해 전영창에 의해 시작된 복음병원(현, 고신의료원) 사역과 고아들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조수옥의 복지사역27)에서 잘 나타난다.

 

8) 하나님 영광을 지향하는 영성

 

하나님 영광은 고신영성이 지향하는 궁극적 방향이다. 초창기 고신의 지도자들의 사역과 삶 속에 하나님 영광은 언제 어디서나 등장하는 기본 명제였다. 한상동은 신사참배 반대의 명분까지도 하나님 영광에서 찾았다. 그는 신사참배 반대이유를 묻는 일제에게 신사참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에 반대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28) 나아가 초창기 고신의 지도자들은 세상적인 명예나 자리를 결코 탐하지 않았고, 삶의 최고의 가치와 영광을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찾았다.

 

4. 고신교단 형성과 고신영성의 쇠락

 

지금까지 해방 전 신사참배 반대운동에서 시발되어 해방 후 고려신학교(1946) 설립과 함께 대한예수교장로회 안에서 교회쇄신운동으로 전개되었던 소위 고려파 운동에 나타난 고신영성의 특징을 고찰하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신영성은 해방 전 7년간(1938-1945)은 일제의 신사참배강요에 대한 반대운동 속에서 발현되었고, 해방 후 고려신학교 설립과 함께 고신교단이 분리 독립될 때까지 7년간(1945-1952)은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참여한 한국장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를 향한 교회쇄신 또는 교회재건 운동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1952년 9월 고신교회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로부터 축출되어 독립하면서 고신영성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고신영성이 가능했던 삶의 자리(Sitz im Leben)가 전환된 것이다. 이전까지 전개된 쇄신운동은 대한예수교장로회 내(內) 교권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를 향한 투쟁으로서의 진리운동이었다. 변절된 다수파를 향한 경건한 소수파의 영성운동이었다. 그러나 장로회 총회로부터 소수파가 단절됨으로써 진리운동으로서의 고신영성은 투쟁의 대상을 상실하게 되었고, 스스로 쇄신과 개혁의 대상이 되면서 그 운동은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이후 진리운동으로서의 고신영성의 본류는 단절되고 고신교회내 지류의 형태로 주로 개인적 차원에 머물게 된다.29) 아이러니하게도 고신교단 분리 독립과 함께 고신영성은 이때부터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30) 교단설립 이후 채 10년이 못되어 고신교회는 기성 교회를 답습해 가기 시작했고, 고신교회 내에서 고신영성은 변질과 타락을 경험하게 된다. 본 장에서는 영성의 세 번째 차원인 실천적 차원에 초점을 맞추어 고신교단 설립 이후 고신영성의 쇠락과 붕괴의 현상을 간략히 고찰하고자 한다.

 

1) 우월주의와 배타성

 

고신교회의 분리 독립은 본래 의도와는 달리 그들의 삶의 자리를 교권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이전시켰고, 이는 곧 자기부정의 자리에서 자기긍정의 자리로 이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초창기 고신영성은 다수의 교권세력에 의해 공격받고 무시당하는 자기부정의 자리에서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살려는 청교도적 열심으로 표출되었으나, 이후 그 열심이 율법적인 자기의(義)로 변하면서 ‘우리만이 진리’라는 우월주의, 영적 엘리트주의에 빠지게 되었다.31) 한국교회 전체를 향한 정화와 쇄신의 열정은 사라지고, 과거 신사참배 반대투쟁이 진리파수라는 자신들의 신앙적 우월성 과시를 위한 독점적 전유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런 태도는 이후 관용과 포용정신의 부재로 이어져 고신교회내 많은 인물들이 교단을 떠나고, 지역주의적 배타성에 편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2) 윤리성의 상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듯이(마7:16) 바른 영성은 필연적으로 바른 윤리적 삶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윤리적 삶은 영성의 진정성을 분별하는 시금석이다. 총회로부터 고신교회의 분리 독립(1952)과 총신과의 합동 환원과정에서 전개된 교세확장을 위한 교회당 쟁탈전, 여기서 연유된 불신법정 소송, 성도간 내분과 대립,32) 1960년대의 고려신학교를 둘러싼 분쟁과 사조이사 사건, 복음병원을 둘러싼 이권 대립, 편법과 문서 위조33) 등 일련의 사건들은 당시 고신영성의 부패와 타락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3) 공동체성의 붕괴

 

1970년대에 이르러 법정소송에 대한 시비로 고신교회는 소위 고소파와 반고소파로 분리된다.34) 이후 재결합이 되었지만, 이 사건은 1960년대 초 총신과의 합동 및 환원사건과 함께 고신교회에 교회적 일치와 공동체성의 붕괴를 스스로 초래한 중대한 사건이다. 초창기 회개를 통해 공동체가 진리 안에서 서로 연합하고 하나가 되기를 소원했던 모습과 정반대로 이 사건은 피차 세속법을 앞세워 공적인 일을 처리함으로써 고신교회에 스스로 분열을 가져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교회 내부적으로 순결이 무너지고 교회의 거룩성이 심대한 훼손을 겪게 되었다.

 

4) 세속주의 우상들에 대한 맹종

 

앞서 고신영성이 당시 세속 국가와 시대정신에 저항하는 영성임을 살펴보았다. 올바른 신학적 성찰이 수반되었다면 1970년대와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 고신교회가 정부를 향해 예언자적 목소리와 함께 저항적 행동을 취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35) 뿐만 아니라, 1970년대와 8-9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사회에 풍미한 성장 이데올로기와 번영 이데올로기라는 보이지 않는 우상이 영적 권세로 우리 앞에 대두되었지만, 고신교회는 물론 고신대학교와 복음병원은 세속주의, 맘몬주의와 영합하며 그 우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 가운데 2002년도 복음병원 부도사태와 이로 인해 4년 세월을 관선이사 체제라는 치욕스런 고신의 ‘바벨론 유수(幽囚)’를 경험해야만 했다.36) 이후 고신교회는 영적, 도덕적으로 여타의 다른 교단 교회들과의 차별성을 상실했고 오늘날은 교권주의라는 또 다른 우상이 군림하며 교회지도자들로부터 경배받고 있다.

 

5. 개혁주의 신학과 고신영성

 

본 장에서는 3장에 나타난 고신영성의 특징들이 개혁주의 신학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Calvin의 견해를 중심으로 간략히 고찰하고자 한다.

 

1)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는 Calvin신학의 중심이자 구원론의 기초인 동시에 영성의 신학적 기초가 된다.37) Calvin에 의하면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켜주는 띠”38)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우리와 그가 하나가 된다. 머리와 지체가 하나로 결합되듯 그리스도가 우리의 것이 되고 그가 받은 선물을 우리도 나눠 가지게 된다.39) 그 은혜를 받는 방법이 기도이며, 기도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와 신비한 교제에 참여한다. 이러한 연합을 가리켜 Calvin은 인간의 이성과 지성의 영역을 넘는 신비적인 것이며, 영적인 경이에 속한다고 말한다.40) 또한 “믿음의 영속적인 행사”41)로서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 즉 그의 명령과 약속에 기초해야 함을 Calvin은 강조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믿음이 생겨나고 믿음을 통해서 기도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선행해야 하고 동기를 제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도는 그 방향과 세부적인 사항에서 바로 그 말씀에 의하여 지배되고 억제되어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42)

 

영성의 신학적 기초 및 하나님 인식 방법에 있어서 고신영성은 Calvin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와 기도론에 분명하게 기초하고 있다. 한편으로 그리스도께 대한 절대적 헌신과 충성 그리고 이를 향한 내적 조건으로서 그리스도와의 친교(communion)의 체험적 성격은 개혁주의 신학 중에서도 신앙의 주관적 체험을 중시하지 않고 말씀의 객관성을 중시하는 유럽 대륙의 개혁주의와 달리 체험을 중시한 영국의 청교도 영성과 맥을 같이 한다.43)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시 교회가 처한 삶의 자리인 역사적 상황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 청교도들이 당시 영국사회의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박해상황과 동일하게 일제 강점기에 일사각오(一死覺悟)의 믿음의 투쟁이 요구되었던 사회적, 종교적 한계상황은 신자들에게 내적 위로와 소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환경이었다. 이러한 삶의 정황 때문에 하나님 인식이 정서적 체험적 형태로 강조되어 나타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여기에는 한국인으로서의 고유한 민족성과 심성이라는 토착적 요소도 고려되어야 한다. 동양인인 한국인은 서구인에 비해 합리성 보다는 감성적 성향이 상대적으로 더 발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에게는 약소국으로서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들부터의 오랜 고난을 통해 형성된 고유한 민족적 정서인 한(恨)의 정서가 내면에 잠재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 역시 고난과 투쟁의 상황 속에서 형성된 고신영성의 체험적 성격에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인으로 보아야 한다.

 

2) 하나님 인식에 있어서 객관과 주관의 균형

 

바른 믿음이 전제된 바른 영성에는 ‘신앙의 객관적 측면’(fides quae creditur)과 ‘신앙의 주관적 측면’(fides qua creditur)이라는 두 요소가 필수적으로 상호 연관되며 성령의 역동적 역사 속에서 이 두 가지가 어느 쪽에 치우치느냐에 따라 영성의 빛깔이 결정된다. 전자에 치우칠 때 이성적, 객관주의적 경향을 띠게 되고, 후자에 치우칠 때 정서적, 주관주의적 경향을 띠게 된다. Calvin의 영성에는 객관과 주관, 말씀과 성령, 두 가지가 인식론적으로 상호 균형을 이루고 있다.44) 말씀을 성령으로부터, 성령을 말씀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으며 성령의 역사를 통해 말씀이 인간의 가슴에 와 닿게 된다. 이 점에서 Calvin에게 하나님 지식은 인격적이고 체험적이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에서 나타난 고신영성의 체험적 특징이 단지 개인적 내면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그리스도를 향한 일사각오의 제자도의 맥락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체험 속에는 Calvin이 강조하는 있는 바, 주관과 객관, 성령과 말씀이 상호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흥집회에서 나타난 회개에 수반된 정서적 특징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체험이 단지 개인적 감정적 체험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과 충성이라는 지향점이 중요하다. 이는 Jonathan Edwards가 주장한 바, 참된 믿음에 있어서 거룩한 정서(affection)의 중요성과 그대로 부합된다. 거룩한 정서란 어떤 것을 지각하고 바라볼 뿐 아니라, 보거나 생각하는 것으로 기울어지는 우리 영혼의 기능이다.45) Edwards는 사랑, 기쁨, 감사, 소망, 바램(desire), 동정, 열심, 미움, 분노, 두려움, 슬픔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하면서 거룩한 정서가 없다면 참 신앙도 없다고 단정한다.46) 고신영성에 나타난 정서적 체험은 바로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거룩한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정서는 그리스도를 위한 일사각오, 지사충성이라는 삶으로 나타났다. 고신영성은 이처럼 하나님 체험에 있어 객관과 주관, 감정적 요소와 의지적 요소가 완벽하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3) 죄고백과 기도의 공동체성

 

Calvin의 기도론에 신학적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죄에 대한 깊은 인식이다.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기도자 자신에 대한 올바른 죄인식이 곧 내적 경건의 출발점이요, 이것이 없이 참된 기도는 불가능하다.47) 기도자의 참된 죄인식이 수반될 때 하나님과 자신이 누구인지 계시의 말씀을 통해 올바로 알고 기도에 임할 수 있고, 기도가 인간의 공로나 실용주의적 수단으로 왜곡, 변질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이런 죄인식이 결여된 기도는 위선이요, 하나님 앞에 가증스럽고 망령된 행위에 불과하다고 Calvin은 주장한다.48) 바로 이 점에서 Calvin은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회개는 신앙과 기도의 열매로서, 죄의 고백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외적인 삶, 지성, 감정, 태도, 의지에 있어 신자가 일생에 걸쳐 복음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다.49) 그러므로 회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삶 자체이며, 신자의 일평생의 과정이다.50)

 

Calvin은 또한 기도의 공동체성을 강조한다, 기도가 개별적으로 행하는 것이지만 성경적 기도란 반드시 공동체, 즉 ‘우리’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51) 그러므로 바른 기도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하고,52) 나아가 반드시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53) Calvin에게 그리스도와 신비한 연합 속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그리스도의 삼중직분과 관련된다. 즉, 선지자, 왕, 제사장 직분과 연관되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깨닫기 위한 선지자적 기도, 거룩한 삶을 위한 영적인 전투로서의 왕적인 기도, 그리고 교회와 세상권세를 위한 도고로서의 제사장적 기도이다.54) 이 점에서 고신영성에 나타난 죄에 대한 애통과 회개, 교회쇄신과 부흥을 지향하는 특성,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는 개혁주의 신학에 부합하는 성경적 기도의 모범적 실례라 할 수 있다.

 

4) 자기부인과 십자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Calvin에게 성화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원리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연합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의에 대해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에 대해 Calvin은 이중적으로 설명하는데 자기부인과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55) 자기부인은 내면에 있는 부패한 자아의 이해력과 의지를 죽이는 것이고, 십자가를 지는 것은 치욕과 고통, 환란과 같은 외적인 환경을 통해 그리스도처럼 낮아지는 것을 말한다. 고신영성의 특징적 요소인 자기부정 속에는 이 두 가지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당시의 역사적 삶의 정황 자체가 십자가를 지는 삶의 연속이었고, 계속되는 고난과 투쟁 속에서 죽음에 이르는 고통의 상황을 피하고 싶은 내면의 끊임없는 유혹들을 스스로 부정하는 자기부인은 고신영성을 추구하고 따르는 신자들의 삶의 기본 원리로 실천되었다. 자기부인과 십자가를 짊을 통해 저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부활생명을 현재적으로 맛보며 살았다.

 

5) 영성과 성화 및 윤리적 범위

 

Calvin에게 영성은 성화와 직결되어 있다. 그에게 영성이란 “신자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나타나는 거룩(holiness)의 양식(樣式)”을 의미한다.56) 그런데 여기서 간과되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을 통해 형성되는 영성과 윤리의 범위와 방향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전영역과 관련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영성을 개인적, 내면적인 영역으로 국한시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Calvin이 강조하는 신비한 연합의 개념은 그것을 거부한다. 여기에는 개인적 내면적 종교적 영역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외적인 영역 즉 사회, 문화, 정치, 역사적 영역도 포함된다.57) 다시 말해서, Calvin의 신비한 연합은 개인적, 교회적 삶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향한 정치적, 사회적 봉사의 차원을 가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칼빈의 영성은 “세계 속에서의 봉사의 영성”이다.58) 교회쇄신뿐 아니라, 세속권세에 대한 저항과 투쟁, 사회적 약자를 향한 디아코니아의 특징을 지닌 고신영성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 정치적 차원을 포괄하는 통합적 영성이다. 세상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태도와 관련하여 Geoffrey Wainwright가 제안한 다섯 가지 모델의 영성으로 분류할 때 고신영성은 초기 신사참배 강요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는 “문화에 대항하는 그리스도(Christ against culture)” 모델의 모습이 강하지만, 해방 후 사회적 상황 속에서는 “역설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와 문화(Christ and culture in paradox)” 모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59)

 

6. 평가와 전망

 

고려신학교 개교 70주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고신영성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도전과 과제는 무엇인가? 세 가지 방향에서 생각하고자 한다.

 

첫째로 바른 신학을 향한 도전과 과제이다.

 

앞서 고찰한 바와 같이 고려신학교는 신학 이전에 영성으로 시작된 학교이다. 해방직후 한국장로교회 내에서 조선신학교를 중심한 자유주의 신학노선의 대척점에서 바른 신학, 바른 생활, 바른 교회 회복을 향한 소수파의 진리운동으로 대두된 것이 고신영성이다. 신학과 신앙, 신앙고백과 삶이 분열된 거짓 신학에 대한 저항과 도전으로 설립된 것이 고려신학교이다. 그리스도를 향한 순교적 헌신과 삶으로 고백된 고신영성은 신사참배 강요라는 역사적 극한상황 속에서, 한국인의 신앙과 정서로, 한국 땅에서 꽃피운 한국적 개혁주의 영성이요, 십자가의 영성이다. 이 점에서 고신영성은 오늘 우리에게 바른 신학을 향한 도전과 과제를 던져준다. 오늘의 신학이 당면한 과제가 무엇인가? 신학과 영성의 분리이다. 서구신학이 학문화되면서 객관성과 중립성이라는 이름으로 신학본연의 길에서 이탈하고 있다. 신학과 영성이 분리의 길을 걷고 있다. 그 결과 그리스도를 향한 헌신과 충성과는 무관한 신학, 자신의 삶과 분리된 지식과 정보중심의 메마른 신학으로 전락되고 있다. 서구신학에 의존하는 한국의 신학계도 동일한 길을 걷고 있다. 이 점에서 70년 전 고려신학교 출범의 원동력이었던 고신영성은 오늘 우리에게 영성과 신학이 일치된 바른 신학을 회복하도록 도전한다. 참된 신학은 하나님에 관해 이성으로 추론하기 전에 먼저 그분 앞에 기도로 무릎꿇는 것이다. 십자가에 자아를 못박는 신학,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 헌신과 충성으로 고백되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 이 시대에 바른 신학 운동이 고신영성의 산실인 고려(Korea)신학대학원에서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거시적 안목으로 교회를 둘러싼 시대적 상황들, 즉 보이지 않는 영적 권세들에 대한 신학적 해석의 작업과 책임이 신학자들에게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서구신학을 무분별하게 따라갈 것이 아니라, 계시의 말씀에 철저히 기초하면서도 신학하는 주체로서 한국인의 고유한 심성과 민족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한국적 개혁주의 신학과 영성을 정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

 

둘째로 고신교회를 향한 도전과 과제이다.

 

무엇보다도 고신영성이 고신교회의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신영성은 한국장로교회(주류) 안에서 한국교회 재건을 위해 일어난 소수파의 신앙부흥운동, 교회쇄신운동이다. 고신교회의 분리 독립과 함께 소수파 운동으로서의 고신영성은 종언을 고하였다. 고신영성은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유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주목하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고신교회에 주는 도전과 과제는 무엇인가? 한국의 어떤 교단과 교파보다도 오늘 이 시대에 역사적 고신영성을 회복해야 할 더 큰 책임과 사명이 고신교회에 있다는 것이다. 고신영성이 한국적 개혁주의 영성, 십자가의 영성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고신영성의 회복은 곧 한국교회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통’이 고신교회에서부터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 애통 또는 슬픔은 소중한 것을 상실했을 때,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하는 기예(技藝;art)이다.60) 이 일은 고신교회가 고신영성을 자신의 전유물인양 착각하고 자랑해온 태도에서 돌이켜 그 역사와 실체를 바르게 깨닫고 재발견하는데서 시작된다.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선물로 주신 고신영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상실한 것에 대한 깊은 자각에서 시작된다. 고신교회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일을 우선해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신교회가 이 시점에서 고신영성을 새롭게 조명하면서 우리 안에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가슴치며 애통하는 것이다.

셋째로 한국교회를 향한 도전과 과제이다.

 

고신영성은 고신교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나님이 고신교회가 아니라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주신 아름다운 유산이요, 함께 공유해야 할 유산이다. 고신영성은 고신교회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장로교회 역사 속에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신영성은 한국장로교회에서 거부되고 외면당해 왔다. 이것은 한국교회 안에 십자가의 신학, 십자가의 영성이 다수파의 힘(power)의 논리에 의해 부정되고 거부된 것을 뜻한다. 이후 한국장로교 주류 교단의 근저에 영광의 신학이 자리하면서 오늘의 한국교회에는 교권과 맘몬이 우상으로 경배받고 있다.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바른 신앙 바른 영성 바른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려면 역사적 고신영성을 주목하고 그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급격한 쇠퇴기에 들어선 오늘의 한국교회는 그 동안 한국교회가 붙들어온 영광의 신학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한국교회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그 방향성과 지향점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역사적 고신영성에서 찾아야 한다. 고신영성은 미래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로서 한국장로교 역사 속에 묻혀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가장 성경적이면서도 가장 한국적인 영성인 고신영성을 한국교회가 주목하고 다시 회복해야 한다. 고신영성이 한국교회 갱신뿐만 아니라, 세계선교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영적 유산으로 이 시대에 재발견되어 세계교회에 널리 전수되어야 한다.

 

III. 나가는 글

 

고려신학교 설립 70주년을 맞으면서 신학교 출범의 원동력이었던 고신영성의 특징을 개혁주의 신학적으로 재조명하고 평가하였다. 고신영성은 세상권세와 가치의 중심을 거부하고 기꺼이 주변성을 지향했던 한국적 십자가의 영성이다. 하나님 인식의 방법, 영성이 지향하는 방향과 범위 그리고 세상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Calvin의 개혁주의 신학, 특별히 청교도 신학과 일치하는 영성이다. 이 점에서 고신영성은 초대교회와 종교개혁시대의 영성의 맥을 잇는 가장 성경적이면서 한국적인 한국판 개혁주의 영성이라 할 수 있다. 초창기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고려파 영성운동에 참여한 소수의 교회들은 교권주의자들로부터 비난과 외면을 당하는 주변적 자리에 있었지만, 질적으로는 그 시대 한국장로교회의 신앙과 영성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고신교회 분리 독립 이후 고신영성은 한국장로교 주류교단에서 단절되었고 고신교회 내부에서도 급속히 쇠퇴하였다. 오늘의 고신교회와 한국교회는 초창기 믿음의 선배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신앙과 영성의 유산을 잊고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채 세속권세들에 영합하며 그 중심에 서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고신영성을 재발견해야 한다. 이것은 고신교회의 갱신과 부흥을 넘어 한국교회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이다.

 

◆미주

 

1) ‘고려파’라는 용어는 해방 직후 고려신학교 설립 당시 학교명을 정할 때, 당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신학교였던 자유주의 신학노선의 조선신학교에 맞서는 개념으로 한국의 신학을 대표하는 신학교라는 뜻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이었던 최재화 목사(1982-1962)가 제언한 ‘고려’(Korea)라는 용어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상규,『한상동과 그의 시대』(서울: SFC, 2006). 210. 이후 고려신학을 줄여 ‘고신’이라는 용어로 대치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개념은 사라져버리고 교단개념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어 버렸다.

2) 고신정신 또는 고신성으로 표현되어 왔던 종래의 용어는 개념상 한계가 있는 용어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교회에 보편화된 영성이라는 단어가 개념상 더 적절하고 타당한 용어이다. 여기서 고신영성이란 역사적으로 해방 전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시작되어 해방 후 고려신학교 설립(1946)과 함께 대한예수교장로회 안에서 경남노회를 중심으로 소위 고려파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되었던 신앙부흥 및 교회쇄신 운동을 통해 발현된 한국장로교내 소수파 영성을 일컫는다. 소위 고려파라는 명칭으로 이 운동이 전개된 시기는 해방 후 고려신학교 설립부터 고신교단 분리 독립까지 6년의 기간(1946-1952)이다. 하지만, 고신영성이 신사참배반대 운동에서 발원하여 해방과 함께 고려파 운동으로 이어졌으므로 본고에서는 고신영성의 형성과 발현 시기를 해방 전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반대운동 6년의 기간(1938-1945)를 포함하여 고신교단 분리 독립까지 총 14년의 기간(1938-1952)으로 설정해서 논하고자 한다.

3) Alister E. McGrath, Christian Spirituality: An Introduction (Oxford: Blackwell Publishers, 1999), 28-33.

4) McGrath, Christian Spirituality: An Introduction, 27.

5) 「고려신학교 설립취지서」에는 정통신학운동 선언과 함께 Calvin주의 신학수립을 천명하면서, 그 사명을 교회건설에 국한하지 않고 국가건설과 문화건설에까지 적용해야 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이상규,『한상동과 그의 시대』(서울: SFC, 2006). 30-33. 고려신학교 개교 당시 전임 교수는 박윤선 목사 한 사람뿐이었고, 주경신학, 조직신학, 성경신학과 성경원어까지 가르쳤다. 이후 이상근, 김진홍 목사와 한부선(Bruce Hunt) 외 몇몇 선교사가 강의를 도왔으며, 교수진 대부분이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수학한 분들이었다. 허순길,『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1946~1996』(서울: 도서출판 영문, 2009). 93f.

6) 첫해에 입학한 53명의 학생들 가운데도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수년간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사람, 투옥되지는 않았지만 밖에서 온갖 박해를 당한 사람들이 대다수였다.『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1946~1996』. 94.

7) 신자 개인과 공동체는 그들이 소유한 신앙으로 세상 속에 존재하는 모든 다양한 상황들, 예를 들어, 경제, 정치, 사회 문화적 상황, 국제 질서 등에 대해 반응하며 해석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 대한 해석과정은 신앙 공동체가 직면하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 해석과정과 함께 역동적으로 진행된다. 바로 여기에 왜곡, 변질의 가능성이 개입된다. 참고. Edward Farley, “Interpreting Situations: An Inquiry into the nature of Practical Theology,” Lewis S. Mudge & James N. Poling (eds.) Formation and Reflection, The Promise of Practical Theology (Philadelphia: Fortress, 1987), 8-11.

8) H. Berkhof에 의하면, 이들은 갈라디아서 4:9의 stoicheia(우리말: 초등학문)로서 오늘날 국가, 민족주의, 군국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전통문화, 계층,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등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H. Berkhof, Christ: The Meaning of History (London: SCM Press, 1966), 32-33.

9) 군국주의란 군사력에 의한 대외적 발전을 국가의 중요한 목적으로 생각하여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의 사회 구조나 국민의 생활양식을 전면적으로 군사력 강화에 종속시키는 체제나 입장을 뜻한다. 참조. daum 사전

10) H. Berkhof, Christ: The Meaning of History, 33.

11) 이 점에서 고신영성이 동일한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장로교회 내에서 일어났지만 신사참배 강요라는 특정한 삶의 정황 속에서 신사 앞에 무릎을 꿇었던 다수파의 영성과는 분명히 차별적인 영성이다.

12) 이상규, 최수경 편집,『한상동 목사, 그의 생애와 신앙』(부산: 글마당, 2000). 71-74.

13) 각주 21 참조.

14) 한상동,『고난과 승리』(부산: 고신대학 교회문제연구소, 1990), 16.

15) 1942년 5월 옥중에서 심문을 받으면서 주남선은 집으로 가서 처자를 돌보라고 그를 회유하는 판사 앞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모든 것을 나의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가정도 처자도 심지어 나의 생명까지도 다 맡겼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나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심군식,『해와 같이 빛나리: 죽지 못한 순교자 주남선 목사 생애』(서울: 성광문화사, 1977). 197f.

16)『한상동 목사, 그의 생애와 신앙』, 115-117. 여기서는 신앙세계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신비적 체험의 차원을 기사와 이적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17) 박윤선, “한상동 목사 옥중기”,「파수꾼」Vol. 27 1953): 20.

18) 각주 31) 참조.

19) 주남선 목사의 전기에는 그가 신사참배반대 죄목으로 체포되어 주기철 목사 및 다른 목사와 성도들과 함께 평양형무소로 이감될 때, 주기철 목사의 얼굴과 그를 바라보는 성도들의 얼굴에서 공회 앞에선 스데반의 얼굴처럼 찬란한 광채가 빛나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심군식,『해와 같이 빛나리: 죽지 못한 순교자 주남선 목사 생애』(서울: 성광문화사, 1977). 158f.

20) 이상규, “고신초기와 고신정신”, 미래교회포럼,「고신교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I」(2014): 62.

21) 6.25 동란 중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교역자 수양회에서 박윤선 교수가 새벽기도회를 인도할 때, 한 사람씩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고, 이후 제주도와 포로수용소와 전국 각지를 돌며 설교할 때 회개운동이 계속 일어났다. 합동신학교출판부 편,『박윤선의 생애와 신앙』(수원: 합동신학교출판부, 1995), 34-36.

22) 김형규, “개혁주의 선교신학의 확립을 위한 제안,”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세계선교위원회,「변화와 성숙: 고신선교포럼 자료집」(2004): 63.

23)『한상동 목사, 그의 생애와 신앙』, 24.

24) 이는 고신교회의 학생신앙운동(SFC) 강령 제 3조에 나타나 있다.

3. 우리의 사명은 다음과 같다

-개혁주의 신앙의 대한교회 건설과 국가와 학원의 복음화

-개혁주의 신앙의 세계교회 건설과 세계의 복음화

25) 주남선의 옥중기도 제목에는 다음의 내용이 담겨있다;

“1)말세에 바벨론 우상제국이 파괴되고 2) 신앙의 자유를 허락해 달라고 했으며, 3) 조선의 자주 독립을 달라고 했으며, 4) 신사참배는 말소되고 5) 조선 교회지도자 교양을 위하여 수도원을 설립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였으며, 6) 거창에 성경학원 하나 설립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황창기 외 4인 편집,『주남선 목사의 신앙과 삶』(부산: 고신대학교, 2001), 71.

26) 주기철 목사는 1944. 4. 21. 신사참배 반대중 옥중에서 순교했기 때문에 해방이후 전개된 고려파 운동과는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본래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경남노회 소속 진해 웅천교회 출신으로, 함께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주도했던 한상동 목사와는 부산 초량교회와 평양 산정현 교회 전임과 후임의 관계로서 그의 영성은 고신영성과 맥을 같이 한다. 1939년 2월 5일 7개월간 극심한 고문 속에서 옥고를 치른 후, 잠시 방면되어 그가 담임하던 산정현 교회에서 <5종목의 나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행한 마지막 설교에는 사망의 권세를 향한 저항과 투쟁의 기도가 담겨있다. 정연희,『순교자 주기철(하)』(서울: 두란노, 2003), 177-179.

27) 조수옥 권사는 한상동, 주남선 목사와 함께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다가 5년의 옥고를 치른 후, 사재를 털어 인애원(고아원)을 비롯해 경남종합복지관, 청소년복지관, 노인보호소를 잇달아 설립하고 평생을 사회적 약자들의 친구와 어머니로 살았다.

28) 김형규, “개혁주의 선교신학의 확립을 위한 제안”,「변화와 성숙: 고신선교 포럼 자료집」, 세계선교위원회 편집 (서울: 총회출판국, 2004), 61.

29) 고신교회 독립 이후 고신영성은 교단정치와 상관이 없는 학생신앙운동(Student For Christ)을 통해 상당 기간 지속되었다.

30) 이 점에서 고신영성을 고신교회의 영성과 동일시하는 것은 착각이다. 고신영성은 이제 교단과 교파의 장벽을 넘어 이 시대 한국교회에 ‘남은 자들’ 속에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고신교회에는 어떤 교단보다도 고신영성의 역사적 유산을 이 시대 한국교회에 회복해야 할 더 큰 책임과 사명이 있을 뿐이다.

31) 이상규, “고신초기와 고신정신”, 64. 그 대표적인 예가 성도간 법정소송 문제와 주일성수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해 교장직 해임과 교수직 정지와 함께 박윤선 교수가 고려신학교를 떠나게 된 사건이다. 허순길,『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1946~1996』, 111-138.

32) 한상동 목사의 경우 고신교단 분립시 초량교회에서 모든 재산을 두고 절대 다수의 교인들과 빈손으로 나왔지만, 송상석 목사를 중심한 일부 지도자들은 교회재산을 지키기 위해 성도간 투쟁과 법정 고소를 불사했을 뿐 아니라 이를 방관하였다. 미래교회포럼, “고신 60년사를 정리하면서: 고신성의 정립과 이탈과 붕괴 그리고 향후 과제”, 미래교회포럼(편),「고신교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I」(2014): 14.

33) 미래교회포럼, “고신 60년사를 정리하면서: 고신성의 정립과 이탈과 붕괴 그리고 향후 과제”, 16-18.

34) 이상규, “고신교회의 법정소송문제”, 미래교회포럼,「고신교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II」(2014): 235-247. 10970년대 초 고신교회 내에서 일어난 내분과 대립, 교권싸움은 법정소송으로 비화되었고, 결국에는 고소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한상동 목사 중심의 부산노회와 소송불가론을 주장하는 송상석 목사 중심의 경남노회가 소위 고소파와 반고소파로 분리되었다.

35) 역설적으로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에 앞장섰던 한국기독교 장로회(기장)가 민중신학을 기반으로 1970년대와 80년대에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다.

36) 미래교회포럼, “고신 60년사를 정리하면서: 고신성의 정립과 이탈과 붕괴 그리고 향후 과제”, 19.

37) K. Runia, "Spiritualiteit bij Calvin", in Spiritualitiet, (ed), W. van't Spijker et al, (Kampen: De Groot Gouderiaan, 1993), 172; Charles Partee. "Calvin's Central Dogma Again", The Sixteenth Century Journal 18, 2, (Summer, 1987): 196; 원종천,「Calvin과 청교도 영성」(서울: 도서출판 하나, 1994), 28에서 재인용.

38)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III.1.1.

39) Institutes, III.11.10.

40)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 천상의 삶이 지상에 넘쳐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육체는 성령의 측량할 수 없는 사역이 없이는 우리에게 생명이나 효력을 줄 수가 없다.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내주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며 그분이 우리를 지탱하고 양육하며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성취해 나가신다..... 이것이 얼마나 나의 이해의 한계를 넘어선 일인지? 내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이라곤 신비란 말 이외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Calvin, Letter 2266 to Peter Martyr Vermigli, 8 August 1555, C. O. 15:723. 정승훈, 『종교개혁과 Calvin의 영성』(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0), p.68에서 재인용.

41) Institutes, III.1.20.

42) Calvin, Commentaires., Psalm 35:23.

43) 원종천,『Calvin과 청교도 영성』(서울: 도서출판 하나, 1994). 23.

44) Lucien Joseph Richard, The Spirituality of John Calvin (Atlanta: GA John Knox Press, 1974), 154-164.

45) Jonathan Edwards (Yale University Press, 1959), vol.2, “Religious Affections,” ed., by John Smith, p. 119. 양낙흥, “조나단 에드워즈의 종교적 정서론 분석,” 고려신학대학원,「개혁신학과 교회」제 14호 (2003): 137.

46) 양낙흥, “조나단 에드워즈의 종교적 정서론 분석,” 139.

47) Hans Scholl, Dienst des Gebetes nach Johannes Calvin (Zürich: Zwingli Verlag, 1968), 219-221.

48) “스스로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혹은 스스로 죄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이런저런 죄를 용서해 달라고 거짓으로 구한다면 그것보다 하나님께 가증되고 망령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거짓이야말로 하나님을 분명하게 조롱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기독교 강요 III.20.6).

49) Joel R. Beeke, Puritan Reformed Spirituality: A Practical Theological Study from our Reformed and Puritan Heritage (New York: Evangelical Press, 2006), 21.

50) Joel R. Beeke, Puritan Reformed Spirituality, 21.

51) Institutes, III.20.39.

52) Institutes, III.20.35.

53) Institutes, III.20.38.

54) 김순성, “목회사역의 원리와 방법으로서의 기도 –바른 기도 없이 바른 목회 없다-”,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복음과 실천신학」제 40권 (2016): 59-66.

55) 로날드 S. 월레스, 나용화 역,「Calvin의 기독교 생활원리」(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6), 73-74.

56) Lucien Joseph Richard, The Spirituality of John Calvin, 1.

57) Paul Chung, "Calvin and the Holy Spirit: A Reconsideration in Light of Spirituality and Social Ethics", The Journal of the Society for Pentecostal Studies. 「PNEUMA」 vol. 24, No 1, Spring (2002): 45.

58) Lucien Joseph Richard, The Spirituality of John Calvin, 174-178.

59) 참고. McGrath, Christian Spirituality: An Introduction, 19-24.

 

60) Gerald A. Arbuckle, Grieving for Change: A Spirituality for Refounding Gospel Communities (London: Geoffrey Chapman, 199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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