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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칭의에 대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의 입장

 

2017.10.30.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에서 칭의의 복음을 재발견하고, 이 복음의 진리로 중세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은 이신칭의에 죄인의 구원과 교회의 사활이 달려 있다고 보았으며, 이신칭의를 기독교 신앙을 굳게 떠받치는 주축으로 간주하였다. 종교개혁의 유산을 받은 교회들은 이신칭의의 복음에 견고히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종교개혁의 칭의론에 대한 많은 비판과 반론이 제기되면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일부 신학자들은 중세 교회를 개혁한 칭의론이 한국교회를 타락하게 만든 주범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신칭의에 대한 신대원 교수들의 입장을 밝힘과 동시에 개혁신학이 가르쳐온 전통적인 칭의론이 성경에 충실한 교리라는 사실을 천명하고자 한다.

 

1. 우리 모든 교수들은 칼빈이 확립하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규정한 전통적인 칭의론이 성경에 충실한 교리라고 확신하며 그 근본 입장을 따른다.

 

2. 이신칭의는 삼위 하나님의 구속 사역으로 성취된 복음의 핵심이다. 

 

이신칭의는 “내가 어떻게 하여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제시한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이 이신칭의인 것이다. 하나님은 죄 없는 성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어 율법의 저주를 받게 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써 죄인들을 의롭다하실 뿐 아니라, 자신도 의로우실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확립하셨다(롬 3:25-26).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성취하신 의로움 덕분에 불의한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3. 칭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내리신 법적인 판결이다. 

 

칭의(의롭다 하심)는 근본적으로 법정적 개념이다. “의롭다 하다”는 표현이 칠십인역 구약과 바울 서신에서 법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신 25:1; 롬 8:33-34). 법정에서 판사가 피고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하늘의 법정에서 하나님이 죄인에게 내리시는 판결은 죄인을 실제적으로 의롭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해주는 것이다(롬 3:22-2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1장 1항;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60문답; 존 칼빈, 『기독교 강요』, 3.11.2.). 하나님의 칭의 선언은 소극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을 포함한다. 소극적인 면은 죄인의 죄를 사하시고 무죄 선언을 하시는 것이고, 적극적인 면은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심으로써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님께 법적으로 전가되고, 예수님의 의로움이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이다(롬 5:12-21; 고전 1:30; 고후 5:21; 빌 3: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1장 1항; 하이델베르크 60문답). 그 결과 우리가 죄를 용서받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에 힘입어 의인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4. 칭의의 근거는 우리 안에 전혀 없고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이루신 의로움에 있다. 

 

의가 전혀 없는 불의한 죄인이 의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히 성취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이루신 의로움만이 칭의의 유일한 근거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시고, 그 의를 우리 자신의 의로 여겨주신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온전히 의로운 자로 서게 되는 것이다.

 

5. 칭의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에 근거하여 확정적으로 내려진 판결이기에 유보된 것일 수 없고, 성화에 따라 완성되는 것일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가하신 그리스도의 의는 완전하고 최종적인 것이므로 우리의 성화 여부에 따라 결코 변할 수 없다. 우리의 칭의 또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에 근거한 것이라서 변화될 수 없다. 일부 신학자들은 칭의가 마지막 심판에서 신자의 성화에 근거하여 완성된다는 유보적인 칭의론을 주장한다. 그런 주장은 칭의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에 근거하여 은혜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이다(롬 3:24). 이 땅에서 이룬 신자의 성화는 항상 불완전하기에 칭의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공로나 근거가 될 수 없다(웨스트민스터 16장 5항;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62문답, 114문답). 신자가 이 땅에서 아무리 탁월한 거룩함의 경지에 이르렀을지라도 그 경건을 의지해서 한순간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 의로움은 심히 불완전하고 죄로 오염되어있기 때문이다. 오직 온전한 의로움만이 죄인을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한다(『기독교 강요』, 3.14.12). 따라서 칼빈에 따르면, 거룩함은 칭의의 열매로 반드시 나타나야 하지만 조금이라도 칭의의 근거나 전제조건이 될 수는 없다.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완전한 의로움에 근거하여 확정적으로 내려진 것이기에 완전하며, 영원히 변개될 수 없다(롬 8:1, 30, 33-39; 웨스트민스터 대교리 문답 77).

 

6. 신자는 오직 믿음(sola fide)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지만 그 믿음조차 칭의의 근거나 공로가 될 수 없다. 

 

칭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므로 신자는 오직 믿음으로 그 선물을 받을 뿐이다(롬 3:24, 30; 갈 2:16; 3:24). 하나님이 칭의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실 때 믿음의 그릇에 담아 주시는데, 그 그릇마저 성령의 은혜로 만들어 주신다. 믿음은 칭의를 받는 수단에 불과하다. 만약 믿음이 칭의의 근거라면 믿음이 또 하나의 행함이나 공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의로움만을 칭의의 유일한 근거로 바라보는 데 있다(롬 3:21-26; 4:1-8; 갈 2:16;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61). 성부 하나님이 친히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에 근거하여 믿음을 수단으로 삼아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이다.

 

7.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신자는 동시에 거룩하게 된다. 종교개혁의 칭의론에 대한 가장 큰 비난은 이신칭의가 신자를 방종과 나태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칼빈과 개혁교회의 전통에서 가장 우려하고 경계한 것이 칭의론이 그런 식으로 남용되는 위험이었다. 그러나 개혁교회에서는 의롭다함을 받은 신자는 반드시 선행의 열매를 맺는다고 가르쳐왔다. 칼빈이 주장한 대로,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칭의와 성화를 동시적으로 체험한다. 칭의와 성화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다(칼빈, 『기독교 강요』, 3.11.1; 3.16.1.). 따라서 성화 없이 칭의만 있을 수는 없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이렇게 반문한다. “감사치도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삶을 계속 살면서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도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음란한 자, 우상 숭배자, 간음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욕하는 자, 강도질하는 자나 그와 같은 죄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87).

 

8. 구원의 다양한 측면들, 즉 중생과 회심, 칭의와 성화, 양자됨과 성령의 내주, 견인과 영화는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하나로 긴밀하게 연합되어있다. 

 

구원의 다양한 측면들은 은혜의 황금 사슬로 엮어져 있다. 이 황금 사슬은 하나님의 영원불변한 사랑에 닻을 내리고 있고 하나님의 전능한 손에 붙잡혀 있기에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다. 하나님은 자신이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며 의롭다 하신 이를 반드시 거룩하게 하며 영화롭게 하신다(롬 8:30).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누구도 저지할 수 없다. 우리 안에 구원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그 구원을 완성하신다. 하나님이 성령을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심으로 우리 구원을 인치시고 보증하신다(고후 1:22, 엡4:30). 죄의 지배로부터의 해방, 양자 됨, 성령의 내주, 성화, 소망 가운데 인내함(견인), 영화가 모두 칭의의 선물에서 흘러나오는 특권과 은혜이다. 이런 점에서 칭의는 구원의 모든 요소를 힘차게 떠받치고 있는 은혜의 반석이다.

 

9. 따라서 성령으로 거듭나고 죄에서 돌이킨 회심과 거룩하게 사는 성화가 없이 칭의만 홀로 분리되어있을 수 없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그것은 의롭다 하심을 얻은 개인에게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모든 다른 구원하시는 은혜들을 동반하며,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한다.”고 하였다(11장 2항).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은 동시에 성령으로 거듭나고 죄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아들의 형상으로 성화되어간다. 물론 이 땅에서 신자가 완전한 성화에 이르지는 못하기에(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42), 자신이 이룬 거룩함으로 인해 우월의식이나 교만에 빠질 수 없고 항상 겸손히 칭의의 은혜를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참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신자라면 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회개와 성화의 열매를 점점 더 풍성히 맺어가야 한다. 이 거룩함의 열매는 칭의의 전제 조건이나 근거가 아니라, 칭의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열매이다. 야고보 사도가 말했듯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약 2:26). 종교개혁의 칭의론이 신자를 방종에 빠지게 한다는 비난을 잠재우는 가장 강력한 변론은 이 교리를 신봉하는 이들이 거룩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럴 때 고귀한 종교개혁의 유산이 길이 계승되며 빛나게 될 것이다.

 

 

칭의론은 개혁교회를 태동시켰을 뿐 아니라 지난 500년 동안 개혁교회를 굳건히 지탱해온 진리이다. 이 교리가 바르게 전파될 때마다 교회가 생명력으로 왕성해지고 건강하게 성장하였다. 개혁교회에서 칭의 교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구원 메시지의 심장이며 심오한 영성의 바탕이고 복음의 젖줄이며 고통당하는 양심의 위안이다. 오늘날 진정한 부흥을 고대하는 한국교회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이신칭의의 복음이 바르게 전파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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